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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작가(왼쪽)는 소설가의 뇌 구조를 건축 도면에 빗대며 “연민을 위한 ‘테라스’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자리에 가서 자주 앉아 있는 것 같다고. “문학을 삶에 들여놓는다면 독자분들도 이미 그 테라스에 앉아 계신 겁니다.” 양회성 기자 여름밤이었다. 소설가 윤고은(46)이 주택가 테니스코트를 지나는데 흙바닥에 라임색 열매 같은 것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테니스공이었다. “까먹고 싶었어요.” 엉뚱한 말 같지만, 그에겐 꽤 자연스러운 연상이었다. 테니스공은 북실북실한 털로 덮여 있고, 어둠 속에 흩어져 있는 모양새는 마치 나무에서 툭툭 떨어진 과일처럼 보였다. 다음 날 같은 곳을 지날 땐 테니스공이 카트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제철과일 코너 같았다. 한번 시작된 상상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 소설이 자랐다. 윤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테니스나무’(문학동네)는 한여름에서 가을을 지나 다시 여름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한 연인의 사랑을 따라간다. 21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소설에 유독 비유가 많다는 말에 “성가실 정도”라며 웃었다. “일상에서 이런 순간을 정말 많이 마주해요. 사물이나 풍경을 보면서 자꾸 뭔가를 연상하는 거죠.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상어 귀여운 버전도 있고 무서운 버전도 있어요. 그냥 제 기질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연애 소설, 마냥 귀엽지만 않다. 인공지능(AI), 자동화, 플랫폼, 관할 구역, 분업화된 노동 같은 것들이 끼어든다. 윤 작가는 7년 넘게 생방송 라디오 ‘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진행하며 주 4회 경기 성남시 분당 집에서 고양시 일산 스튜디오까지 출퇴근하고 있다. 환승을 두세 번씩 하던 어느 날, 지하철역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전날에도 같은 옷차림과 자세로 누워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혹시 계속 쓰러져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역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답은 “지금 어느 노선이냐”는 질문이었다. 관할 노선 아니면 도와주기 어렵단 설명이 이어졌다. 그 경험이 ‘테니스나무’의 한 축이 됐다. “관할 구역이 나뉘어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인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거죠. 소설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깔려 있던 사회 인식 중 하나가 컨베이어벨트처럼 모든 게 흘러가고, 각자에게 ‘나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어요.” 해저이야기사이트 윤 작가는 “이렇게 흘러가는 움직임이 결국 어떤 것에 일조하는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현대인에겐 없는 것 같다”며 “열심히 일 했지만 거대 악을 만들 수도 있고 위험을 방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역할이 촘촘하게 나뉠수록 오히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틈’을 이 소설은 비집고 들어간다. AI가 더 이상 거창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이미 일상에 들어와 있는 풍경으로 그려진 。도 흥미롭다. 윤 작가는 2021년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대거상을 받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에서 기후위기를 다룰 때도 비슷했다고 했다. 수상 당시 “신랄한 유머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까발린 미친 듯이 재미있는 친환경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기후위기를 쓰겠다고 작정하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다고. “그냥 제가 살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AI도 똑같아요. ‘난 AI를 쓰겠어’가 아니라 너무 공기 같은 현실인 거죠. (제게 AI를 묘사하는 것은) 맑고 25도인 가을날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에요.” 읽는 동안엔 경쾌한 연애담처럼 흘러가는 소설. 한데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었나’ 하는 여운이 남는다. 소설가 정이현은 추천사에 “윤고은만의 사회파 연애소설”이라 썼다. 익숙한 세계를 조금은 다르게 보게 된다. 테니스공을 열매로 착각한 어느 여름밤처럼. 일산 스튜디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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