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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휴가를 하루 내고 여의도의 한 극장을 찾았습니다. 집 근처 상영관은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어, 차라리 지하철로 이동하는 수고를 택했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작품과 인터뷰로 이뤄진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이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1936년생인 그는 1964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뒤 60여 년간 100번 넘게 바다를 건너며, 청계천 판잣집부터 동두천 기지촌과 도자기까지 10만 컷이 넘는 이 땅의 얼굴을 찍어 왔습니다. 일본 보도사진계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90·사진). 그의 한쪽 눈은 어릴적 사고로 실명했다/ 영화사 제공 이번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그의 작업에서 일본 미나마타병의 참상과 그 후유증을 기록한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관련한 그의 대표작은,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당시 비를 맞으며 침묵 속에 거리를 걷던 서울대생들의 모습입니다. 이와 함께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판자촌의 고단한 삶을 담은 연작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1965년 찍은 청계천 판잣집 모습이다. 눈빛출판사 제공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등지에서 여러 차례 전시가 열려 왔습니다. 두터운 팬덤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일 오후여서였을까요. 꼭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크게 흥행했다는 소문은 없으니까요. 그날도 관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열 대여섯 명. 그 얼굴들을 살짝 훑어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머리가 희끗한 중노년이었습니다. 1950~60년대 생으로 보이는, 이제는 은퇴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었죠. 젊은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라딘 릴게임 . 그는 한국 신문기자들의 호흡으로는 좇기 버거웠던 격변의 현대사를 차분히 기록하고 정리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진가들보다 오히려 한국 현대사를 더 잘 기록한 사진가로 평가받습니다. 지금 4, 50대 신문 사진기자들에게 그가 끼친 영향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과 육성을, 영화라는 대중적인 장르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렌즈 2개와 렌즈 3개의 차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한 대목은, 렌즈를 2개 가져가느냐 3개 가져가느냐를 두고 한국인 아내와 벌이는 ‘티키타카’였습니다. 출장 가는 남편에게 아내가 묻습니다. 렌즈 몇 개 가져가느냐고. 3개라고 하자, 하나 빼고 2개만 가져가라고 합니다. 아흔이 넘은 고령에 카메라 바디와 렌즈 3개를 들고 현장에 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저도 알기에, 아내분의 걱정은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사진 욕심이 있는 사람은 장비를 더 챙겨 가고 싶어 합니다. 렌즈 크기에 따라 쓰임이 다르니, 혹시 적절한 렌즈가 없어 좋은 장면을 놓치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겁니다. 출장을 가면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의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줄이고 촬영 장비를 하나라도 더 실을지 말지를 저울질하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며 이 고민은 조금 줄었습니다. 필름 시대에 해외 취재를 나가려면 ① 카메라와 기본 렌즈 가방 ② 망원렌즈 가방 ③ 스캐너와 노트북 가방 ④ 필름 현상 약품 가방 ⑤ 옷 가방을 들어야 했습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어플 보조 인력 없이 혼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양쪽 어깨에 두 개씩, 등에 하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옷 가방을 풀어, ①~④ 가방의 빈틈에 조금씩 나눠 넣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③번 가방이 가벼워졌고 ④번 가방은 사라졌으니 훨씬 나은 환경입니다. 그래도 렌즈 하나를 더 넣을지 뺄지는 늘 숙제입니다. 저는 지금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취재를 와 있습니다. 이번에 가져온 렌즈는 모두 4개. 망원 3개에 작은 렌즈 하나입니다. 2대의 카메라와 2개의 노트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렌즈 하나를 더 넣어오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다른 생활필수품 하나를 포기해야 했는데 더 뺄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 몸으로 찍은 사진 화면에서 제 눈이 멈춘 것은 그의 손이었습니다. 아흔의 또 다른 동료 사진가와 함께, 맨손으로 현상 약품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피부가 상하는 줄 알면서도 60년을 그렇게 만져 온 손입니다. 옛날 사진가들은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는 어릴 때 오른쪽 눈을 잃어 왼쪽 눈 하나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웃습니다. “핀트는 내가 제일 잘 맞췄어.” 세상의 변화는 한계를 뛰어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초。은 이제 AI 기능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학 약품에 노출되는 위험도 사라졌습니다. 구와바라 선생이 카메라 앞에서 담담히 남긴 말 하나가 오래 남습니다. 잔인한 사진은 팔리지 않는다고, 돈은 들지만 사 주는 사람은 없는 일이라고.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수록 셈이 맞지 않는 장사였다는 고백입니다. ● 스크린의 얼굴, 객석의 얼굴 다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젊은 관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반응도 무덤덤합니다. 바다이야기 사건 그러고 보니 20, 30대에게 1960~70년대 한국을 찍은 일본 사진가의 작업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서 딱히 배울 것도, 재미도 크지 않으니까요. 사진기자들 사이에서도 1980년대 초반 생까지가 이 정서를 이해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타사 사진기자들과 나눕니다. 영화관을 직접 찾은 분들은 어쩌면 60년 전 이 땅에서 젊은 날을 악전고투하며 보낸 분들일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런 부모를 어릴 적 지켜본 아들 세대쯤이겠지요. 스크린 속 60년 전 얼굴에서 자신과 부모의 젊은 날이 찍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 밖에서 온 눈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켠에서 올라온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성실히 아무리 오래 이 땅을 기록했다 해도, 밖에서 온 사람의 시선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어떤 장면은, 그것을 찍는 일과 그것으로 마음 앓이를 하는 일이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셔터를 누른 사람과, 그 프레임 안에서 현실을 살아낸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수십만 컷의 필름으로도 다 메워지지 않습니다. 그의 60년을 결코 낮잡아 하는 말은 아닙니다. 시민들의 거친 항의도, 공권력의 폭력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을 견디며 한국 현대사를 기록한 성실함에는 존경과 예의를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그의 작품을 발굴해 한국 현대사의 빈틈을 메우는 기록 사진집으로 남기고 세상에 알린 출판사의 수고와 용기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한편으론 세상을 기록한다고 하는 저 자신의 일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경기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처음 보는 나고야의 얼굴에서, 진짜 오늘의 일본을 보고 있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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