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화려한 방 안, 한 남자가 의자에 축 늘어져 앉아 있다. 진흙이 묻은 장화, 흐트러진 옷차림, 바닥에 내던져진 이각모. 의자 등받이에 걸친 손은 무기력하게 떨궈져 있고, 굳게 다문 입과 어두운 표정에는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여 있다.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황제 나폴레옹이다.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가 1840년에 그린 ‘퐁텐블로의 나폴레옹, 1814년 3월 31일’(사진)은 영웅의 빛나는 승리가 아닌, 몰락의 순간을 포착한다. 1814년 3월 31일 연합군이 파리를 함락하자, 퐁텐블로 궁전에 머물던 나폴레옹은 나흘 뒤 퇴위를 선언하고 결국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들라로슈는 황제가 정치적 종말을 받아들이기 전,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기울었음을 깨달은 순간을 포착했다.
그림에는 전쟁터도 군대도 없다. 나폴레옹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각모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하얀 제복 위에 걸친 회색 외투는 그의 처지처럼 무겁게 늘어져 있다. 승자의 위엄도, 황제의 기세도 찾아보기 어렵다. 제국을 호령하던 절대권력자는 이제 홀로 남아 자신의 패배를 직면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는 궁전의 실내 장식은 방 주인의 쓸쓸한 처지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권력은 멀리서 바라볼 때만 화려하다
손오공추천
. 욕망을 좇는 이는 높은 자리를 갈망하고, 그곳에 오르면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러나 권력은 손에 넣는 순간부터 대가를 요구한다. 막중한 책임과 판단, 비판과 고립, 그리고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권력의 무게는 정상에 오를 때보다 내려와야 할 때 더 선명해진다. 왕관은 쓰기 전에는 욕망이지만, 쓰고 난 뒤에는 버거운 무게가 된다. 들라로슈가 그린 것은 패배한 황제의 초상이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 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인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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