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사할린 한인 3세 고인준씨와 부인 고려인 3세 김엘레나씨. 고인준씨 제공
“어릴 때는 한국인이라고 차별받았죠. 생긴 것부터 다르잖아요. 거긴(러시아) 다 백인이고…. 근데 한국에 오니까 저는 또 낯선 이방인이더라고요. 말이 서투니까.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요즘 많이 혼란스러워요.”
지난 17일 저녁 울산 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인준(36)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검은 머리카락과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그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한국어는 서툴다. 아직은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게 더 익숙한 그는 사할린 한인 3세다. 고씨의 할머니가 러시아 사할린에 터를 잡았단다.
고씨는 2018년 9월 재외동포 비자(F4)로 한국에 왔다. “진짜 고향으로 돌아오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땐 설?던 것 같아요.”
“남쪽에 울산이라는 바닷가 도시가 있는데, 거기 조선소에 가면 일자리가 많대.”
경기도 김포의 한 타일공장에서 8개월가량 일하던 고씨에게 지인이 귀띔했다. 바다가 그립던 참이었다. “제가 나고 자란 사할린도 바닷가예요. 울산 동구에 와서 보니 마음도 따뜻해지더라고요. 여기 바다 냄새도 사할린과 꼭 닮았어요. 첫인상이 참 좋은 곳이었죠.”
그와 마주앉은 카페 유리창 너머 에 이치디(HD)현대중공업. 2019년 그는 이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됐다. 고려인 3세인 부인 김엘레나(43)씨와 두 자녀도 그를 따라 동구에 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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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어요. 그래도 해야 했어요. 나름 인내심은 좋은 편이에요.” 가장의 책임이 일의 고됨보다 무거웠다.
조선소 일은 힘들고 위험하다고 익히 악명이 높다. 그만큼 처우는 좋지도 않아 내국인 노동자가 기피하고, 그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고씨는 러시아어를 쓰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했다. 그의 일터는 기형적인 조선소 하청 구조와 차별이 뒤섞인 곳이었다.
2019년부터 하청노동자로 살아
하청업체 4대 보험 미가입 문제 등에
목소리 내다 최근 다른 일자리 구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하청지회 가입
13일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참석
“말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더군요”
고씨는 조선소에서 ‘유령 노동자’였다. 하청노동자들은 날마다 원청이 허가한 출입증을 받는데, 이때 고씨는 사내하청업체인 ㄷ업체 소속이었다. 하지만 고씨와 근로계약을 맺은 곳은 ㄷ업체가 아닌 ㅈ업체였다. 일감이 있을 때만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일명 ‘물량팀’과는 다른 ‘재하도급’ 형태란다. 고씨는 두 업체에서 절반씩 월급을 받았다. 고씨는 이런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월급은 따박따박 들어오니 괜찮다 여겼단다.
문제는 4대 보험이었다. 고씨의 월급명세서에는 ‘4대 보험’ 공제 내역이 찍혀 있지만, 그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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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데려다 일을 시킨 회사 어느 곳에서도 보험 가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고씨만 겪는 일은 아니었다. 하청노동자들의 4대 보험 미가입 문제가 끊이지 않자, 원청은 지난 7월부터 미가입 노동자에 대해 출입금지 조처를 했다. 그제야 ㄷ업체는 고씨의 4대 보험 가입 절차를 밟았지만, 여전히 정식 근로계약은 맺지 않았다고 한다. 불합리한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밟히기 시작하더니,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일하다 다쳐도 제때 병원에 갈 수 없어요. 다친 상태로 (원청 등) 관리자를 마주치면 안 된대요. 손가락이 찢어졌는데도 바로 병원에 못 가고 다음날 꿰맨 동료도 있어요.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뭐라 했어요. 뭔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 며칠씩 일하러 오지 말래요.”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석한 고인준씨 부부. 고인준씨 제공
사쪽과의 갈등 뒤 고씨는 일하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몇시간씩 영상을 봐야 했단다. 조선소 홍보, 힘들고 어려운 직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동남아시아의 바다낚시 등 일관성 없는 영상들이었다. 결국 그는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 재외동포 비자인 그는 비교적 자유롭게 일터를 옮길 수 있지만, 취업 비자(E7, E9 등)로 온 이주노동자들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고씨는 최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했다.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도 참석했다.
“그동안 노조 가까이는 가지 마라, 블랙리스트에 찍히면 일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말만 들었어요. 근데 말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아요.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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