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노브레인이 아니었다면 이성우(왼쪽)와 황현성은 30년 동안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아니요." 황현성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서로 성향이 너무 달라서였다. 사진은 '환상의 콤비'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 록스타뮤직 연습실에서 최근 만난 두 사람의 모습. 이성우가 마이크를 잡았고, 황현성이 드럼 세트 앞에 앉았다. 박지연 인턴기자
<환상의 콤비> 30년째 사람 체면을 벗겼다... 노브레인, '조선 펑크'의 반전
"나랑 미친 듯이 놀자~."
축가가 울려 퍼지자 얌전히 앉아 있던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펑크 록 밴드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50)는 결혼식장을 순식간에 록 페스티벌처럼 바꿔놨다. 지난해 가을 그의 결혼식에서였다. 신랑 이성우는 예복 상의를 벗고 가죽 재킷으로 갈아입더니 자신의 결혼식 축가로 노브레인의 노래 '미친 듯 놀자'를 직접 불렀다. 그의 뒤엔 30년 동안 같은 밴드에서 동고동락한 황현성(48)이 드럼을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신나게 판을 벌이자 갑자기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뛰쳐나와 합류했다. 이성우의 장인이었다. 부모석을 박차고 나온 장인은 사위 앞에서 양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췄다.
"장인어른 뛰쳐나오고 처가 쪽 어르신 한 분, 두 분 나와 '지르박춤'을 추시더라고요. '어,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재밌었지만 놀랐거든요, 저도." 서울 마포구에 있는 록스타뮤직앤라이브 연습실에서 최근 만난 이성우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노브레인은 그렇게 30년 동안 사람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나이도 장소도 크게 상관없었다. '넌 내게 반했어', '그것은 젊음' 같은 노브레인 히트곡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체면부터 내려놨다. 이성우의 걸걸한 목소리에 황현성의 앞만 보고 내달리는 듯한 드럼 연주가 더해지면 관객들은 열 살이든 예순이든 몸부터 먼저 반응했다. 노브레인의 음악은 그렇게 나이를 지우고 누구든 '지금 이 순간을 온몸으로 사는 청춘'으로 돌려놓았다. 1996년 결성해 올해 30년을 맞은 이 밴드의 저력이었다.
밴드 노브레인 이성우(왼쪽)와 황현성이 1990년대 서울 홍대 소재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아카이브K' 영상 캡처
노브레인의 30년은 곧 한국 인디 음악의 역사다. 1996년 홍대 앞 작은 라이브 클럽('드럭')에서 공연을 시작한 노브레인은 크라잉넛과 '조선 펑크' 바람을 일으켰다. 음악만 새로웠던 게 아니다. 자신들이 뛰어놀 무대부터 바꿨다. 노브레인은 당시 일반 음식.으로 분류돼 공연이 금지됐던 홍대 라이브 클럽 합법화 운동에 앞장서 지하 공연장에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데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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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는 "데뷔 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브레인의 '소란'은 단순히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불합리한 규제와 편견에 "왜 안 돼?"라고 맞서는 것이 이들이 보여준 '펑크 정신'이었다.
그 '소란'의 시간을 이성우와 황현성은 처음부터 함께 했다. 거듭된 멤버 교체에도 두 사람은 끝까지 밴드를 지켰다. 역경을 딛고 30년을 같은 밴드에서 지냈다면 서로 닮아갈 법도 하지만 둘은 정반대였다. 음악 취향부터 노는 방법, 삶의 방향까지 죄다 다르다고 했다.
"정말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까지 다르다고?' 싶을 정도로요. 사소하게 전 소주로 반주하는 걸 즐기는데, 형(이성우)은 위스키를 좋아하거든요. 전 겨울이 좋은데, 형은 반대예요. 땀 흘리는 여름 좋아하고요. 어느 순간 느꼈죠, 아, 서로 평행선이겠다. 그렇게 나란히 온 거 같아요. 나랑 굉장히 다른 종류의 인생을 사는 동료인 거죠. 그게 제게 무게감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황현성의 말이다.
이성우는 황현성과 30년을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변하고 상대방도 변하는데 그 변화를 서로 인정하지 못하면 힘들죠. 저희도 싸웠어요. 싸우고 나면 한동안 분위기가 안 좋죠. 그런데 무대에 올라 공연하며 땀 같이 흘리고 나면 '그래, 내가 이 친구 안 보듬어주면 누가 보듬어주나' 이런 게 생기더라고요."
황현성은 30년 동안 둘을 묶어온 노브레인을 "좋은 의미의 족쇄"라고 표현했다. 밴드 안에서 평행선처럼 나란히 달리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 '환상의 콤비'가 30년을 버틴 비결이다.
-그렇게 안 맞는 두 사람이 음악할 때는 어떻게 시너지가 나나요?
이성우=현성이가 아이디어가 좋아요. 제가 (곡) 코드랑 가사를 들고 와서 ‘야, 이런 노래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하면 살을 잘 붙여줘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에너지가 곡에 실리더라고요. 현성이가 그렇게 편곡해서 잘 나온 곡이 ‘컴 온 컴 온 마산스트리트여’였고요. 제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도 워낙 잘 아니까 녹음할 때 디렉팅(감독)도 잘해줘요. 무엇보다 밴드에선 드럼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리듬이고, 그 리듬을 만드는 게 드럼이니까요. 현성이가 제가 뛰어놀 판을 잘 만들어주는 거죠. 이 친구가 아파서 객원 연주자와 공연한 적도 있는데… 아, 답답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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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성=전 뒤에서 만지고 다듬는 음악적 잔노동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 늘 뒤로 물러나려는 습성이 있고,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고요. 그런데 성우 형은 그냥 문을 박차고 나가서 ‘야!’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죠. 뭐가 안 풀릴 때 형이 ‘야, 그냥 질러버려’라고 하는데, 솔직히 저는 그 말에 감정적으로도 안 끌리고 이성적으로도 동의가 안 돼요. 그런데 확실한 건 노브레인은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팀이라는 거예요. 노브레인한테는 그게 맞는 방식이었던 거죠. 형이 앞에서 나가면 저도 한 걸음씩 용기를 내서 따라 나가고요. 그런 게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이성우씨가 쓴 책'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2022)를 보니 이성우씨의 목소리 이상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도 현성 씨더라고요.
이성우=코로나19 팬데믹 때 목이 정말 안 좋았어요. 녹음을 하는데 노래가 잘 안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현성이가 '형, 목이 좀 심각한 것 같아'라고 했어요. 제 목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이잖아요. ‘강철 성대’라고 자부했는데 목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병원 치료를 받아도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고요. '대체 뭐가 문제일까?' 고민했는데 나중에 자율신경계 문제라는 걸 알게 됐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좋아졌어요. 그런데 제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올 때 현성이는 별말을 안 했어요. 나중에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하고 물었더니 ‘내가 옆에서 뭐라고 한다고 형한테 지금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옆에서 기다려주겠다는 말처럼 들렸어요. 참 고마웠죠.
-30년이면 밴드를 그만둘 만한 위기도 여러 번 있었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인가'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황현성=(기타리스트였던) 차승우가 나갔을 때는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워낙 중요한 멤버였으니까요. 주변에서도 다들 ‘차승우 나갔으니 너희는 끝났어’라고 했고요. 승우가 나간 뒤 3집을 만들 때 저희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어요. 음악적 노선도 어느 때보다 크게 바뀌었고요. 그렇게 멤버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도 노브레인이 이어져 왔잖아요. 그게 부끄럽지는 않아요. 어떻게든 버틴 거니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겨도 ‘형, 일단 혼자 버텨. 나 나으면 다시 올게’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성우=코로나19 팬데믹 때 놀이터 같았던 공연장에 가는 일이 한 달에 한 번 될까 말까 한 거예요. 오늘과 내일이 불확실하고 (공연) 욕구가 그렇게 억눌리다 보니 불면증이 심해졌죠. 지인 소개로 상담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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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그만둬도 상관없어야 그 일에 더 집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라고요. 처음엔 당황스러웠죠.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그만둔다고? 그랬더니 '록을 25년 정도 했는데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영화 '라디오스타'(2006) 속 노브레인의 모습. 이 영화 출연으로 노브레인은 대중적으로 이름을 더 알렸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영화 '라디오스타' 속 안성기의 모습. 시네마서비스 제공
-30년을 오는 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도 많아졌죠. 올해는 영화 '라디오스타'(2006)를 함께한 안성기씨도 세상을 떠났고요.
이성우=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슬펐어요. 영화 찍을 때 저희를 친조카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거든요. 그 인자했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죠. 제 삼촌이 돌아가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안성기 부고가 알려지자) 사람들이 ‘라디오스타’ 엔딩 장면을 SNS에 많이 올렸잖아요. 저도 다시 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황현성=‘라디오스타’를 함께했던 안성기 선배님, 방준석 음악감독님,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님이 다 돌아가셨어요. 저는 정 대표님을 ‘승혜 누나’라고 불렀어요. 저희를 영화에 출연시키자고 처음 의견을 낸 분이 승혜 누나였거든요. 그래서 노브레인 공연에서 ‘비와 당신’이 나오면 저도 따라 불러요. 하늘에 있는 승혜 누나가 들었으면 해서요. 그래서 ‘비와 당신’은 제게 일종의 묵념 같은 노래가 됐어요.
밴드 노브레인 보컬 이성우의 스무 살 때 모습. 고향인 마산에서 음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는 당시 크라잉넛 멤버들의 집을 오가며 숙식을 해결했다. '아카이브K' 영상 캡처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이성우는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한 말이었다. 당시 이성우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삐쭉빼쭉 고슴도치처럼 세워 다녔다. 음악을 시작한 20대 이성우에게 돌아온 건 박수가 아니라 조롱과 냉소였다. 공연하러 홍대로 가는 길엔 툭하면 불심검문을 당했다. 하루에 두 번 넘게 신분증과 소지품 검사를 받아 화를 냈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
그렇게 이단아 취급받던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에게 끌렸다. "성우 형을 처음 봤는데 참 말 안 듣게 생겼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음악과 잘 맞겠는걸?' 싶었죠. 저희가 펑크록 음악을 하니 그땐 멀끔하지 않은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황현성의 말이다. 그렇게 한 팀이 된 두 사람은 "우리 노래를 들으면 '돌아이' 된다"는 뜻에서 밴드 이름을 노브레인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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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그룹"이라며 밴드 노브레인을 추천했다. '패션뉴로시스' 영상 캡처
그로부터 30년. "진짜 세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룹인데요, 노브레인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인 RM이 '날것의 팽팽한 에너지를 가진 아티스트를 추천해 달라'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노브레인을 꼽으면서 국내외 젊은 K팝 팬들의 시선이 다시 이 밴드에게로 쏠렸다. "RM과 친분이 없었거든요. 무슨 일인가 싶었죠." 이성우도 놀란 눈치였다.
"RM이 '대한민국 최초의 인디 클럽'이라며 드럭 얘기를 했다고 공연장에 갔던 지인한테 들었어요. 저희가 처음 공연했던 공연장이잖아요? 이 친구(RM)가 '인디 문화에 관심이 많구나'라고 생각한 적은 있죠."
밴드 노브레인이 록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록스타뮤직 홈페이지 캡처
-요즘 젊은 세대가 노브레인을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황현성=요즘 밴드들 정말 멋있고 잘하죠. 그런데 저희처럼 무대에서 자유분방하게 막 노는 팀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모습 때문에 아직도 저희를 찾아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죠?
이성우=저희랑 같이 머리카락 삐쭉빼쭉 세우고 공연장에서 놀던 친구들이 이제 부모가 됐잖아요.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에 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흰 와이셔츠에 양복 차림 그대로 퇴근해서 오는 분들도 있고요. 신기한 건 정말 어린 친구들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한 번은 한 중학생이 1집을 들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 친구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앨범인데 ‘이걸 어떻게 알지?’ 궁금했죠. 알고 보니 그 학생 아버지가 샀던 앨범이더라고요. 아버지 앨범을 듣고 아들이 노브레인 공연장까지 찾아온 거죠.
-그런데 록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잖아요. 노브레인도 위기감을 느끼나요?
황현성=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물론 전자음악이나 힙합 같은 장르가 크게 부흥했지만, 록도 예전보다 훨씬 대중화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이제 록을 무조건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여기지는 않잖아요.
이성우=저도 록의 파이는 예전보다 커졌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세대는 록에 대한 거부감 자체가 거의 없거든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데이식스처럼) 밴드로 크게 성공한 사례도 많고요. 요즘은 아이가 집에서 ‘나 록 밴드 할래’ 하면 부모가 오히려 밀어준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때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죠.
-두 분의 나이가 쉰 언저리예요. 펑크의 야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성우=목소리가 예전만큼 안 나온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성대도 나이를 먹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하고 연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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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레슨도 받고 있고요. 지금이 제 인생의 두 번째 챕터라고 생각해요. 나이 든 이성우를 어떻게 잘 만들어서 보여줄지가 숙제인 거죠. 그 숙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게 또 재미있고요.
황현성=몸은 아무래도 둔해졌죠. 걱정도 많아졌고요. 그런데 음악적으로는 오히려 ‘펑크니까 이래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분노하지 않는데 분노한 척하고 싶지는 않아요. 반대로 정말 화가 나는데 착한 척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 면에선 오히려 예전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밴드 노브레인은 후배 가수들과 교류도 활발하다. 이성우는 임영웅과도 친분이 두텁다. 이성우의 아내는 임영웅의 영어 과외 선생이었다. TV조선 제공
노브레인의 30주년 슬로건은 '여전히 소란스럽게'다.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바람과 다시 한번 소란을 일으키고 싶은 욕심을 담았다. 다만, 소란을 만드는 방식은 달라졌다. 이성우는 "예전엔 소란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만들었다면, 이젠 함께 소란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소리를 지르면 상대도 '왜!' 하고 되받아치는" 소란이다.
이번엔 후배와 소리를 섞었다. 노브레인은 십센치의 히트곡 '아메리카노'를 새로 편곡해 함께 부른 곡을 지난달 24일 공개했다.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은 한국 펑크 록 음악의 1세대 인디 밴드다. 록스타뮤직 제공
노브레인의 30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밴드가 있다. 홍대 클럽 드럭에서 함께 출발한 크라잉넛이다. 너무 오래 나란히 달려서일까. 두 밴드는 이제 사람들에게 종종 헷갈리는 사이가 됐다. 노브레인이 KBS 음악프로그램 '더 시즌즈' 녹화를 마치고 찾은 맥줏집에서도 그랬다. "사장님, 노브레인 노래 중 뭐 듣고 싶은 거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사장님은 "'말 달리자'"라고 답했다. 노브레인이 아닌 크라잉넛의 대표곡이다. 한숨부터 나올 법했지만 이성우는 "살다 보면 그런 거지"라며 주저 없이 '말 달리자'를 불렀다. 노브레인이 30년 동안 배운 건 소란은 혼자 오래 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크라잉넛은 노브레인의 '주적'인가요?
※ 이 기사는 한국일보의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은 한국일보닷컴에서 로그인 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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